[1편] 전문대 졸업생, 연봉 1억을 넘기까지 – 시작점은 누구보다 낮았다

소개 – 전문대 졸업생 연봉 1억을 넘기까지 이야기

나는 전문대 졸업생이다.
그것도 수능 점수가 낮아, 원하지 않는 과에 점수를 맞춰 억지로 들어갔다.

첫 직장의 연봉은 1,800만 원.
세금을 제하고 나면 한 달에 120만 원 남짓이었고, 그걸로 생계를 이어갔다.

여러 번의 희망퇴직 통보, 임금 체불까지 겪었지만
그로부터 14년이 지난 지금, 내 연봉은 1억을 훌쩍 넘긴다.
그리고 현재는 국내 3대 게임회사 중 한 곳에서 팀장 직책을 맡고 있다.

이 글을 쓰는 건 자랑하거나 내세우기 위함이 아니다.
그 과정을 돌아보며 얻은 몇 가지 원칙이 있다.
그 작은 깨달음을 기록하고, 누군가에겐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내가 가장 많이 배운 순간은, 내가 가장 많이 틀렸을 때였다.”
— 레이 달리오 (브리지워터 창립자)


게임과 영화, 나를 살린 유일한 탈출구

어릴 적 나는 게임과 영화를 참 많이 했다.
MS-DOS 시절부터 각종 게임기를 섭렵하며 동네에서도 유명한 게이머였다.

그 시절, 상가마다 게임 샵이 있었다.
단골이었던 나는 매일같이 들렀고, 사장님은 항상 반갑게 맞아주셨다.
용산 전자상가에도 자주 찾아가 구경하고, 게임을 사고,
때론 무서운 형들에게 돈을 빼앗길 뻔한 일도 있었다.

초등학교 4학년 무렵, 게임은 나에게 단순한 놀이를 넘어선 도피처였다.

그 즈음, 아버지의 사업이 무너졌고 가정 형편은 급격히 어려워졌다.
어머니까지 생계를 위해 나섰고, 형과 나는 부모님이 올 때까지 빈집에서 기다리기 일쑤였다.
이사를 자주 다녀 동네 친구도 거의 없었다.
그 외로움을 달래준 게 바로 게임과 영화였다.

중학교에 들어선 뒤엔 영화에 빠져 주말마다 비디오를 빌려봤다.
재미있는 영화는 대사를 외울 정도로 반복해서 보곤 했다.
그 시절 나는 성룡, 주윤발, 이연걸이 나오는 홍콩 영화에 빠졌고,
‘다이하드 1’을 보고 헐리우드 영화에 입문했다.

공부는 못했지만, 영화 덕분에 영어 점수가 올랐다.
그렇게 나는 게임과 영화로 학창 시절을 대부분 보냈다.
공부해야 할 시기에도 머릿속엔 늘 영상과 스토리뿐이었다.


좋아하는 걸 직업으로 삼기까지

“좋아하는 것도 좋지만, 일단은 좋은 대학에 가야지.”
부모님과 친구들은 이렇게 말했지만, 나는 알았다.
좋아하는 일을 할 수만 있다면, 누구보다 열심히 할 수 있다는 걸.

그래서 고민했다.
‘내가 좋아하는 걸 직업으로 삼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대학 졸업 후 바로 취업하지 못해, 아르바이트와 계약직으로 생계를 이어갔다.
그때 한창 인라인 스케이트가 유행이었고, 나는 묘기 인라인에 빠졌다.
난간 위를 점프하고 계단을 내려오며 묘기를 즐겼다.

그 모습을 영상으로 찍어 편집해 싸이월드와 다음 카페에 올렸다.
영화를 좋아했던 나는 편집을 취미로 즐기고 있었기에 어렵지 않았다.
그리고 반응은 꽤 괜찮았다.

그러던 중, 극장에서 영화 ‘트랜스포머’가 개봉했다.
어릴 적 장난감으로 가지고 놀던 변신 로봇이 스크린에서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그 장면을 보고 나는 충격을 받았다.
심장이 두근거렸고, 결심했다.

“CG를 배워서, 저런 영상을 직접 만들고 싶다.”

바로 학원에 등록했고, 1년 반 동안 밤낮으로 CG를 공부했다.
특히 마지막 6개월은 하루 몇 시간 자며 포트폴리오에 매달렸다.
그리고 첫 회사에 들어갔다.

소규모 애니메이션 회사였고, 연봉은 1,800만 원.
세금을 제하면 겨우 120만 원을 손에 쥘 수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설렜다.
이 일이 앞으로 나를 어디로 데려갈지, 기대됐기 때문이다.


덕업일치의 시작

애니메이션 회사에 다니면서도 마음속엔 늘 게임이 자리하고 있었다.
“언젠간, 게임 영상을 내가 직접 연출하고 싶다.”
그 꿈을 향한 열망은 계속 커져갔다.

CG 제작 방식은 게임 영상과도 비슷한 점이 많았다.
그래서 애니메이션을 배우면서도 꾸준히 게임 업계를 눈여겨봤다.

게임 업계 채용 사이트는 매일 확인했다.
흐름도 익히고, 어떤 회사들이 어떤 사람을 뽑는지도 파악했다.

그러던 어느 날, 눈여겨보던 회사의 채용공고가 떴다.
완전히 딱 맞는 포지션은 아니었지만, 도전해볼 만했다.

퇴근 후 몇 밤을 새며 포트폴리오를 보완했고, 지원서를 보냈다.
기대는 하지 않았다.
학벌도, 전공도, 경력도 내세울 게 없었으니까.

그런데 연락이 왔다.
면접이 잡혔고, 나는 기뻐 날뛰었다.
그와 동시에 걱정도 밀려왔다.

면접은 총 3차례. 마지막은 임원 면접이었다.
며칠을 매달려 준비했지만, 불안감은 가시지 않았다.

그래도 내게는 ‘열정’이 있었다.
게임과 영화를 20년 넘게 파고든 집요함.
그 애정과 이해도가 나의 무기였다.

그것을 믿고, 면접에서 진심을 담아 이야기했다.
결과는…

합격.

나는 그렇게, 어린 시절부터 꿈꾸던 게임 업계에 한 발을 내디뎠다.

– 2편에서 계속

– 별미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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